20140524

들숨/독서 2014.05.24 10:27
도롱뇽과의전쟁 상세보기

요즘 읽고 있는 책

카렐 차페크에 대해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하..하..)

그런데 요번에 중고 서점에 갔다 우연히 집어온 온다 리쿠의 구석진 곳의 풍경이라는 책을 읽는데, "아마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체코라고 하면 제일 먼저 카렐 차페크를 떠올릴 것이다"라는 문구를 보게 된 것이다. 아니 체코 하면 카프카가 아니었나! 나만 모르는 건가 ㅠㅠ

그래서 생긴 궁금증은 카렐 차페크가 쓴 "곤충 극장"이라는 극작품을 읽게 했고, 그 유머로 녹여내는 신랄함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물론 그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너무 좋다.) 마지막 민달팽이들의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찍어놨는데... 볼때마다 빵 터질 정도.... 실제 체코어(로 쓰여있긴 하겠지?)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만, 평생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민달팽이 1  "쥥쥥거리지 마! 우리랑은 아뮤 상관됴 업는 일이쟌하!"


그래서.. 각설하고 결과적으로 지금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고 있다.

어제 저녁을 먹고 나서 회사에서 벌인 (매우 가벼운)종교논쟁이 갑자기 떠오르는데, 그때 어떤 분이 하나님의 뜻은 대의를 위한 것이지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비슷한 말을 해서 내가 그럼 개개인의 현실의 생은 중요한 것이 아니냐라고 반박했었다. 대의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야 하느냐. 결국 개개인의 현실에서의 삶이 비록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결국 천국에만 가면 되는 것이냐. 정말 그걸로 되는 것이냐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그 존중받아야 마땅한 '개인'의 범주를 인간으로만 상정해 놓고 있었다. 도롱뇽따위의 행복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결국 우리도 인간의 대의를 위해 다른 생명체의 행복을 앗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순간 섬칫했다.

책에서 보면 도롱뇽들은 인간에 의해 '번성하고 번성하라' 번성한다. (여기서 성경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각자의 삶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목적 지향적이다.(도롱뇽들은 그 선천적 능력에 따라 토목사업에 충원된다던지 부자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려 그들을 즐겁게 해 주거나..)

나는 어렸을 때 삶에는 정해진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런게 있어야만 삶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내가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도 결국 삶에 목적 따윈 없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 결론에 한동안 절망스러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결국 깨닫게 되었다. 삶에 정해진 목적 같은게 없어야 진정으로 자유로운게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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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기억시간의지층을탐험하는이미지와기억의미학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황수영 (그린비그린비라이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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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작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다. 하물며 베르그손이 살았던 19~20세기에는 어떠했을까. 사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도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물음은 많이 제기되어 왔고, 거기에 나름대로의 답변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한 이후에도 우리는 정신의 실체를, 그 동작방식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점에 있어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세기도 더 전에 나타난, 심지어는 신비주의에까지 이르는 설명을 믿고 있다.

베르그손이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했던 것은 정신이 물질적 실재를 떠나 세상과 구별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을 부정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신체(뇌를 포함한)는 지상의 모든 다른 물체와 같이 작용/반작용에 의해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물질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선택이라는 능동적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는 눈의 근육을 이용하여 보고자 하는 사물에 초점을 맞춰야 그 대상을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즉, 우리는 외부의 수많은 이미지들에서 취사선택을 하여 우리의 내부에 저장한다. 이 때 저장되는 이미지들은 물질과 구별된 단순한 표상이 아닌 실재와 같은 것이다. 전체적인 지속의 흐름 속에서 파악된 순간 순간의 단면들을 이미지라고 한다. 이렇게 저장된 이미지(기억)은 반작용을 해야 할 때 여러 가지 가능한 행동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식으로 세계의 이미지와 신체 내부의 이미지는 신체라는 접점을 통해 서로 통해 있으며 결국 전체 이미지의 부분 집합이 개인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 시대상을 모르는 나로써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베르그손과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소수가 아니었을까. 이런 관점이 자칫 잘못하면 기계론적 시각으로 빠질 수 있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은 이 이론이 능동적 자아를 전제한다고 했을 때, 그 능동적 자아는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이다. 책에서 잠깐 본 대로 주변에 적응하기 위한 이유로 신경계가 발달하고 판단을 위해 유보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라면, 자아의 위치는 어디일까.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 정말 자의적 활동인 것일까. 그 이면에는 세계의 법칙이 조정하고 있는 걸까.

그냥 책을 읽을때는 잘 몰랐는데, 적다보니까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논리가 아직 불확실한 것 같다. 아직도 불명확한 것이 너무 많고 궁금증은 자꾸 떠오르고,
아직 중반 정도 까지밖에 못 읽긴 했지만, 앞 부분에서 제시된 이미지, 지속, 기억과 같은 개념이 확실해지려면 아직도 몇 번 더 반복해서 읽어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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